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팅/기록

아무튼, 술 - 김혼비

hicetnunc_stella 2020. 9. 11. 15:59

원래 빌릴려고 했던 책 (데미안,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찾아놓고,

한 권을 더 대여해야겠다는 마음에 책을 찾아보다가 불현듯,

"아무튼, 술"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아무튼' 시리즈는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라고 한다.

 

누군가의 후기를 보고, 언젠간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검색해보니 마침 있어서 냉큼 빌려와서 단숨에 읽었다. 

책의 분량이 많지도 않고 작가님의 필력이 좋아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는 도중 내 마음에 남겨진 글귀들을 기록해 놓으려고 한다.

 


술 마시고 힘을 낸다는 것.

 

나는 어려서부터 힘내라는 말을 싫어했다.

힘내라는 말은 대게 도저히 힘을 낼 수도, 낼 힘도 엇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서야 

다정하지만 너무 느지막하거나 무심해서 잔인하게 건네지곤 했고, 

나를 힘없게 만드는 주범인 바로 그 사람이 건넬 때도 많았다.

나는 너에게 병도 줬지만 약도 줬으니, 힘내.

힘들겠지만 어쨌든 알아서, 힘내.

세상에 "힘내"라는 말처럼 힘없는 말이 또 있을까.

하지만 이때만큼은 "힘내"라는 말이 내 혀끝에서 만들어지는 순간, 매일매일 술이나 마시고

다니던 그 시간들 속에서 사실 나는 이말이 듣고 싶었다는 걸,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누가 무슨 의도로 말했든 상관없이. 그냥 그 말 그대로 힘내.


술이 인생을 바꾼 순간.

 

최고의 술친구와 함께 산다는 건 세상 모든 술이 다 들어 있는 술 창고를 집에 두고 사는 것과 같다.

언제든 원하는 때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술을 마실 수 있으니까.

 

냉장고 문을 닫는 순간 몇 시간 후 시원한 술을 마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듯이, 

신나서 술잔에 술을 따르는 순간 다음 날 숙취로 머리가 지끈지끈할 가능성이 열리듯이,

문을 닫으면 저편 어디간의 다른 문이 항상 열린다. 

완전히 '닫는다'는 인생에 잘없다.

 

삶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니까.

 

 


와인, 어쩌면 가장 무서운 술

 

살면서 그런 축소와 확장의 갈림길에 몇 번이고 놓이다 보니, 

축소가 꼭 확장의 반대말만은 아닌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되었다.

때로는 한 세계의 축소가 다른 세계의 확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축소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확장이 돌발적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축소해야 할 세계와 대비를 이뤄 확장해야 할 세계가 더 또렷이 보이기도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계를 확장하라고, 기꺼이 모험에 몸을 던지라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지만

감당의 몫을 책임져주지는 않으니까. 감당의 깜냥은 각자 다르니까.

빚내서 하는 여행이 모두에게 다 좋으란 법은 없으니까.

 


술에 대한 저자의 경험에서 비롯한 이야기로 부터,

삶에 대해 다시 돌아 볼 수 있는 그런 책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