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빌릴려고 했던 책 (데미안,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찾아놓고,
한 권을 더 대여해야겠다는 마음에 책을 찾아보다가 불현듯,
"아무튼, 술"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아무튼' 시리즈는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라고 한다.
누군가의 후기를 보고, 언젠간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검색해보니 마침 있어서 냉큼 빌려와서 단숨에 읽었다.
책의 분량이 많지도 않고 작가님의 필력이 좋아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는 도중 내 마음에 남겨진 글귀들을 기록해 놓으려고 한다.
술 마시고 힘을 낸다는 것.
나는 어려서부터 힘내라는 말을 싫어했다.
힘내라는 말은 대게 도저히 힘을 낼 수도, 낼 힘도 엇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서야
다정하지만 너무 느지막하거나 무심해서 잔인하게 건네지곤 했고,
나를 힘없게 만드는 주범인 바로 그 사람이 건넬 때도 많았다.
나는 너에게 병도 줬지만 약도 줬으니, 힘내.
힘들겠지만 어쨌든 알아서, 힘내.
세상에 "힘내"라는 말처럼 힘없는 말이 또 있을까.
하지만 이때만큼은 "힘내"라는 말이 내 혀끝에서 만들어지는 순간, 매일매일 술이나 마시고
다니던 그 시간들 속에서 사실 나는 이말이 듣고 싶었다는 걸,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누가 무슨 의도로 말했든 상관없이. 그냥 그 말 그대로 힘내.
술이 인생을 바꾼 순간.
최고의 술친구와 함께 산다는 건 세상 모든 술이 다 들어 있는 술 창고를 집에 두고 사는 것과 같다.
언제든 원하는 때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술을 마실 수 있으니까.
냉장고 문을 닫는 순간 몇 시간 후 시원한 술을 마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듯이,
신나서 술잔에 술을 따르는 순간 다음 날 숙취로 머리가 지끈지끈할 가능성이 열리듯이,
문을 닫으면 저편 어디간의 다른 문이 항상 열린다.
완전히 '닫는다'는 인생에 잘없다.
삶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니까.
와인, 어쩌면 가장 무서운 술
살면서 그런 축소와 확장의 갈림길에 몇 번이고 놓이다 보니,
축소가 꼭 확장의 반대말만은 아닌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되었다.
때로는 한 세계의 축소가 다른 세계의 확장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축소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확장이 돌발적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축소해야 할 세계와 대비를 이뤄 확장해야 할 세계가 더 또렷이 보이기도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계를 확장하라고, 기꺼이 모험에 몸을 던지라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지만
감당의 몫을 책임져주지는 않으니까. 감당의 깜냥은 각자 다르니까.
빚내서 하는 여행이 모두에게 다 좋으란 법은 없으니까.
술에 대한 저자의 경험에서 비롯한 이야기로 부터,
삶에 대해 다시 돌아 볼 수 있는 그런 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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