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삶을 돌아보고 정리해 보시니까 좋죠? 삶은 돌아보면 70퍼센트 정도는 우리가 어찌하지 못해요. 부모님한테 받은 병약한 몸, 우리가 어찌하지 못하죠.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 겪었던 모든 환경들도 내가 어찌하지 못해요. 우리가 어찌하지 못하는 그 많은 것들이 대개 우리 삶의 70퍼센트를 지배해요. 이 70퍼센트를 계속 끌고 갈 것인지 말 것인지가 여러분의 숙제예요. 노력으로 안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남은 30퍼센트에 우리는 힘을 쓰지만 이미 주어진 70퍼센트는 엄연히 나의 현실로 존재해요. 이걸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지만 주어지는 거거든요. 나머지 몫은 30퍼센트밖에 없어요. 비극적이게도.
머릿속에 항상 넣어 놓으셔야 돼요. 그 70퍼센트는 숨길 필요 없어요. 그건 여러분이 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30퍼센트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책임을 져야 돼요. 폭력을 경험했다고 또 폭력을 행사하는 건 진짜 문제가 있는 거예요. 남은 30퍼센트가 여러분의 몫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그래서 우린 겸손해야 해요. 누군가를 욕하거나 비판할 때 그 70퍼센트에 대해서만 비판을 하면 안 돼요. 두세 살 때 화장품이 날아다니는 충격적인 사건에 아이가 대처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하지만 어른이 됐다면 30퍼센트를 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에게 주어진 많은 상처들을 내가 재배치했는지 돌아봐야 해요. 이분은 누구보다 다른 사람을 많이 이해하실 거예요. 인생은 공평해요. 고통이 심할수록 소설도 잘 읽히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도 현저하게 발달하게 되어 있어요. 물론 이분은 지금 힘들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약속 하나 드릴게요. 10년만 지나면 아이들이 아무리 힘들어하고 고통에 빠져도 품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을 겁니다.
세상은 재미있어요. 어렸을 때 너무 행복하게 지냈던 사람은 나이 들어서 고통을 견디지 못해요. 20대 때 실연을 하면 죽을 것 같지만 그 다음 날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어요. 고통을 쉽게 가라앉힐 수 있는 젊음이 있다는 거지요. 그렇지만 50대, 60대에 실연하면 곡기를 끊게 돼요. 그러니 젊어서 힘든 것이 훨씬 더 나은 거죠. 인생은 그렇거든요. 지금 행복하신 분들은 그걸 저주로 받아들이셔도 돼요. 그런데 젊었을 때 불행히도 고통이 심했다면 그 심한 만큼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고, 사랑할 준비를 갖춘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마지막에 가면을 던진다고 하신 그 구절이 너무 좋아요. 가면을 쓰셔도 돼요. 가면을 던진 사람은 가면을 쓸 수도 있고 벗을 수도 있어요. 지금은 위로가 안 되겠지만 철학자의 말을 믿으셔야 돼요. 좌우지간 10년 뒤에 보면 누구보다 강하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인간이 겪는 고통의 총량은 불변이에요. 카드 결제랑 비슷해요. 일시불로 갚을 수도 있고 30개월 할부로 갚을 수도 있어요. 30개월 할부, 무섭지 않나요? 내가 무슨 물건을 샀는지도 거의 잊어버렸는데 계속 돈을 내는 거잖아요. 이분은 빨리 다 겪으신 거예요. 아마 책이나 영화를 보시면 금방 아실 거예요. 이 작가나 이 감독이 알지 못하고 작품을 만들었는지, 제대로 경험하고 작품을 만들었는지 금방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요. 고통을 경험한 깊이가 얕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를, 그리고 인간을 제대로 평가하기가 힘들죠. 고통의 깊이, 그러니까 삶의 깊이가 있어야 영화도 제대로 보고 소설도 제대로 읽고 판단을 내릴 수 있죠. 그러면 된 거예요. 지금 젊으시죠. 서른여덟이면 괜찮아요. 제가 마흔일곱인데, 이제 살기가 참 괜찮아요. 저에 비해 아직 너무 많은 시간, 더 행복해질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요. 지금까지 잘 견뎌 오신 것, 대견해요. 곧 이 상을 제대로 받는 날이 찾아올 거예요. 난로 만져서 뜨거운 것도 알고요, 칼에 배면 아프다는 것도 알아요. 고통이란 고통을 온몸에 다 가지고 있으면 진짜로 알아요, 삶을. 너무 많은 걸 가지고 계신 거예요. 훌륭하신 거예요. 꼬맹이 때 난로에 손이 덴 사람은 나중에 절대로 난로를 안 만지는데 그걸 못 만져 봤던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난로 위에 앉기도 해요. 어쨌든 난로의 뜨거움은 누구나 알고 죽어요.
그러니 젊은 분들은 까먹지 마세요. 뜨거운 고통이 올 때, 일시불로 갚고 있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갖고 있어야 돼요. 물건 살 때 일시불로 결제하거나 직불카드를 사용한다는 거죠. 그럼 29개월을 덤으로 사는 거예요. 30개월 할부로 물건 사면 나중에 도대체 누구를 위해 월급을 벌고 있는지도 모르게 돼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 시간이 중요해요. 중요한 게 시간이거든요. 상품들과 달리 우리에게 시간은 절대적이니까요. 유한한 삶의 시간. 29개월을 벌었다는 지혜를 얻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젊었을 때 비바람이 쏟아지고 집이 무너질 것 같을 때 고마워하셔야 해요. '다 갚는구나. 고맙다.'
그런데 용기 있는 사람만이, 바깥으로 나가 세상에 계속 접촉하는 사람만이 이 경험을 겪을 거예요. 회사와 집만 다니는 사람은 못 겪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 못 겪은 것은 나중에 다 겪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나이 들어서 겪지 마세요. 추해져요. 에너지도 없고요. 힘든 게 있으면 제 이야기를 떠올리세요. '아, 일시불로 지금 갚는구나.' 물론 그 순간은 무척 힘들어요. 그래서 그거 쪼개서 30개월로 갚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죠. 힘들지만 일시불로 갚고 나서 29개월의 시간을 버는 것이 더 좋지 않나요? 일시불로 갚고 나면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을 할 거고, 나머지 덤으로 주어진 시간은 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으니까요.
강신주의 다상담 -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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