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팅/기록

모든 요일의 기록: - 김민철

hicetnunc_stella 2020. 10. 13. 17:09

 

비극이 알려준 긍정의 태도

 

저자는 신혼여행에서 비행기를 놓치고, 런던에서 아일랜드를 가기위해 140만원을 지불하며.

이 한 구절이 생각났다고 하였다.

 

일어날 객관적 사태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은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주관적 태도일뿐입니다.

나는 다만 내가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나 자신의 주관적 태도를 고상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인 것입니다.

 

-김상봉,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한길사, 2003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때론 책이 우리를 구원한다. 책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책으로 구원받는다.

드물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귀하게도. 고맙게도.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지만,

돌아와 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있었다.

 

- 중국의 시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광채 없는 삶의 하루하루에 있어서는 시간이 우리를 떠메고 간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가 이 시간을 떠메고 가야할 때가 오게 마련이다.

'내일', '나중에', '네가 출세를 하게 되면', '나이가 들면 너도 알게 돼' 하며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고 살고 있다.

이런 모순된 태도는 참 기가 찰 일이다.

미래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이니 말이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책세상, 1998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것,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항상 깨어 있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것,

부단한 성실성으로 순간순간에 임하는 것,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것, 오직 지금만을 살아가는 것, 

오직 이곳만을 살아가는 것, 쉬이 좌절하지 않는 것,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 피할 수 없다면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일상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 일상을 살아나가는 것.

 

영원히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영원히 언덕 위로 밀어올리는 형벌을 받았지만,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통을 향하여 다시 걸어내려오는"시지프 처럼.

자신의 불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깨어 있으면서 결국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한 시지프 공간이 바로 지중해 였던 것이다. 

...

그리고 나는 회사를 다녔다.

묵묵히 일했다.

지금에 충실하기로 했다. 시지프도 견뎠다고 하지 않는가. 아니, 견뎠다는 말은 옳지 않다.

시지프도 자신의 일상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살았다고 하지 않는가.

끊임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언덕 위로 밀어 올리면서도 한치도 타협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언제쯤 내가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라는 헛된 기대도 하지 않고.

나는 어쩌다가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되었을까, 라며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않고.

이것은 나의 인생. 순간순간이 나의 인생. 이 인생의 주인은 나. 하물며 시지프도 그랬다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