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란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죽지 못해 관성과 비탄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이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벌어질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러니까 괜찮다.
부디 평안하기를.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은 조금도 당연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동지가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나와 다투고, 친구가 되기를 반복한다.
지치는 노릇이지만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될 일이다.
불행이란 설국열차 머리칸의 악당들이 아니라 열차 밖에 늘 내리고 있는 눈과 같은 것이다.
치명적이지만 늘 함께할 수 밖에 없다.
과거는 변수일 뿐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저주 같은 것이 아니다.
언젠간 반드시 여러분의 노력을 알아보고 고맙다고 말할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끊임없이 가다듬고 정진하고 버틴다면 반드시 그날이 온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피해의식과 결별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로 결심하라는 것.
무엇보다 등 떠밀려 아무런 선택권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게 아닌 자기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고
당장 이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라는 것. 오직 그것만이 우리 삶에 균형과 평온을 가져올 것이다.
삶의 바닥에서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영원회귀는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이다.
우리가 죽으면 똑같은 인생이 다시 반복된다는 이야기다.
시간 여행이 아니다. 평행우조도 아니다.
완전히 토시 하나 바뀌지 않은 그대로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여러번 읽고 이해한 뒤 토 할 뻔했다.
우리가 과거의 인생을 반복하고 있고 그것을 다시 영원히 반복한다는 아이디어는 끔찍한 생각이다.
니체는 정확히 바로 그 공포에 맞서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운명론적 공포를 극복하고, 반복되더라도 좋을 만큼
모든 순간에 주체적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관없다고, 이토록 끔찍한 삶이라도 내 것이라고 외치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런 삶을 사랑하라 주문하는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바로 그 순간 네 삶의 고통과 즐거움 모두를 주인의 자세로 껴안고
긍정하라는 아모르 파티와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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