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팅/기록

라틴어 수업 - 한동일

hicetnunc_stella 2020. 12. 18. 17:46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 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향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고, 그것을 빼서 쓸 수 있도록

지식을 분류해 꽂을 책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놀리테 티메레 (Nolite timere) !" 두려워 마라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

 

저는 어려서부터 학교와 집에서 "공부해서 남 주냐?"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하지 못했던 대답을 지금은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공부해서 남을 줘야 할 시대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더 힘든 것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철학이 빈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공부를 나눌 줄 모르고 사회를 위해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소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주머니를 불리는 일에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착취당하며 사회구조적으로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는 무신경해요.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과 자기 가족을 위해서는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의 신음소리는 모른 척하기 일쑤입니다. 엄청난 시간과 열정을 들여 공부를 한 머리만 있고 따뜻한 가슴이 없기 때문에 그 공부가 무기가 아니라 

흉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꿈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부한 사람의 포부는 좀 더 크고 넓은 차원의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만 생각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 더 넓은 세계의 행복을 위해 자기 능력이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한 차원 높은 가치를 추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과 달라야 하는 지점은 배움을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쓰느냐 나눔으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워서 남 주는' 그 고귀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성인이 아닐까요?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신인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지식을 나누고 실천할 줄 모르면 지성인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공부를 해나가는 본질적인 목적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왜 공부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공부하는가?' 스스로에게 되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은 타인의 방법이 아니라 나의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남다른 비결이나 왕도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렇기에 묵묵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성서 루카복음 13장 33절에 수록된 문장은 이러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Verumtamen opprtet me hodie et cras et sequenti die ambulare.

베룸타멘 오포르테트 메 호디에 에트 크라스 에트 세쿠엔티 디에 암불라레.

사실은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길을 잃지 않고 잘 가고 있습니까?

그 길을 걸으며 무엇을 생각합니까?

그 길 위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너희가 무엇이든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

마태오복음 18장 18절의 말씀입니다. 이런 성경구절을 읽으며 '내 기억을 정화시키자'고 결심했습니다.

나쁜 기억이라면 좋은 기억으로 정화시키고 좋은 기억이 없다면 좋은 기억을 만들고자 생각했어요.

그런데 좋은 기억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결국 제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제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 나쁜 기억을 품고 가기보다, 차라리 그냥 하고 싶은 것을 충실히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Dilige et fac quod vis.

딜리제 에트 팍  쿼드 비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우리 모두는 생을 시작하면서 삶이라는 주사위가 던져집니다. 어른들에게 물어보세요.

돌이켜보면 시간은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입을 모아 말할 겁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Hoc quoque transibit!

 

신약성서 마태오복음 6장 34절

Nolite ergo esse solliciti in crastinum crastinus enim dies solicitus erit sibi

ipse sufficit diei malitia sua.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마태오는 신앙의 삶이 실현되면 인간이 내일의 근심에서부터 해방되어 오늘을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삶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Hoc quoque transibit!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의 고통과 절망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디엔가 끝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마침표가 찍히기를 원하지만 야속하게도 그게

언제쯤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끝이 날 거라는 겁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러니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끝 모를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순간이, 그 일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나가버렸음을 알게 될 겁니다.

우리가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은 그 말 그대로 기쁘고 좋은 일도 머물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허망하죠?

하지만 그게 인생입니다.

1241년 이규보가 [동국이상국집]에서

"부처님 말씀에 본래 얻고 잃는 것은 없고 잠시 머물 뿐"이라 했습니다.

불강서 완전이란 없어요. 진정한 완전이란 완전의 상태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웃고 울 일들이 일어나고 또 지나가고 그렇게 반복해가는 것일 겁니다.

"완전이란 이미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 시시각각 새로운 창조다"라는 말은 그래서 생각해볼 만합니다.

 

지나가는 것들에 매이지 마세요. 우리조차도 유구한 시간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갈 뿐입니다.